『카메라당과 예술사진 시대: 한국 근대 예술사진 아카이브 1910-1945』

이경민, 사진아카이브연구소.『카메라당과 예술사진 시대: 한국 근대 예술사진 아카이브 1910-1945』, 아카이브북스, 2010


 
한국 아마추어 사진가의 원형, 80년 전의 "카메라당(黨)"

"일제시대 아마추어 사진가는 소인(素人)사진가, 카메라팬, 카메라맨, 카메라군(群), 카메라당(黨), 광화당(光畵黨)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오늘날만큼이나 사진 붐을 이끌었던 아마추어 사진가시대의 예술사진을 만나보자."

'카메라당'이라는 말에서 대개는 '사진당', '필카당', '토이카메라당', '아이폰카메라당(아이폰카당)' 등 사진과 관련된 최근의 각종 '트위터 당'(한국트위터모임)을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카메라당'은 이미 1930년대에 아마추어 사진가를 일컫는 말이었다. 또한 디지털 카메라의 보편화와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한 오늘날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카메라당'의 기원에는 약 80년 전 일제강점기하의 조선 땅에 처음으로 아마추어 사진 붐을 일으키고 예술사진의 관념을 정착시킨 원조 '카메라당'이 놓여 있다.

근대사진과 관련된 신문 기사를 정리한 색인집 『구보씨, 사진 구경가다』에 이어 아카이브사진연구소 한국근대사진연구총서의 두 번째 편으로 발간된 이 책은, 일제강점기 예술사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엮은이 이경민에게 있어 근대 사진을 돌아보는 일은 곧 오늘날의 사진을 둘러싼 관념들을 형성시킨 역사적 기원을 찾는 일이다. 오늘의 사진 문화는 바로 사진이 이 땅에 들어와서 정착되어가던 그 시대와 맞닿아 있으며, 그 기원을 파악하는 것이 현재의 사진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그는 지금까지 근대 사진의 제 양상을 하나하나 밝히고 자료를 발굴하여 사진아카이브로 구축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제 그는 일제강점기를 식민지 상황이라는 특수성 속에서도 한국 사진사에서 최초로 예술로서의 사진에 대한 인식이 발생하여 대중적으로 꽃피운 시기로 보고, 『카메라당과 예술사진 시대』를 통해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아마추어 사진 문화와 '예술사진'의 흔적을 추적하고자 한다.

일제강점기 예술사진을 '살롱사진'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한가?
결론만 존재하고 근거는 사라진 예술사진 담론을 되짚어보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서의 예술사진 아카이브

한국 사진사 연구가 늘 부딪치는 가장 큰 문제는 실물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간 몇몇 소수의 사진가만을 대상으로 서술된 한국 사진사는, 그들을 신화화할 우려를 안고 있는 동시에 한국 사진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내기에도 역부족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일제강점기의 예술사진은, 자료의 부족과 체계적인 정리의 미흡으로 제대로 된 담론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한편 그동안 일제강점기 예술사진은 관행적으로 '살롱사진'이라는 말로 일컬어져왔다. 그러나 이경민은 이 책의 서문에서 '살롱사진'이라는 용어의 타당성 문제를 제기한다. 우선 '살롱사진'이라는 용어가 『경성일보』와 전조선사진동맹이 함께 주최한 ≪조선사진살롱인화모집≫의 약칭인 '사진살롱'에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한다. 하지만 '사진살롱'이라는 호칭이 사용된 것은 총 10회에 걸쳐 진행된 이 공모전 중 단지 몇 회에 그친 일시적인 일이었고, 게다가 특정 공모전을 지칭하는 이 말이 당시에 존재한 다양한 예술사진의 스펙트럼, 다른 공모전의 성격을 모두 포괄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당시의 용어 그대로 '예술사진'이라 불려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또한 근대의 예술사진이 '살롱사진'이라는 말로 폄하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단순히 시대착오적인 사진 형식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 단체들 사이의 패권 다툼의 과정에서 비롯된 현상이었음을 강조한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리얼리즘적인 흐름 속에서 '생활주의'를 주창한 임응식은 해방 이전의 예술사진을 '살롱사진'이라 공격했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리얼리즘 계열 사진의 미학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제강점기부터 예술사진계를 주도해온 서울의 예술사진가들을 폄하하고 사진계 문화 권력을 둘러싼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명분으로 사용한 수사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살롱사진'이라는 말의 기원과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살롱사진'이라는 편견에 찬 낙인만이 반복 재생산되어오는 가운데, 해방 이전 예술사진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는커녕, 그 실체조차도 없는 채로 남아 있었다. 이에 지은이는 이러한 편견을 바로잡고 해방 이전 예술사진에 대한 담론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예술사진의 존재 자체를 복원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고, 그 기초 작업으로서 1차 자료들을 모은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

아마추어 사진가의 시대, 예술사진의 등장에서 제도화까지

그리하여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던 『경성일보』와 『매일신보』, 조선인이 발행한 『동아일보』, 『조선일보』, 『조선중앙일보』 등 일제강점기 신문에 실렸던 예술사진과 관련된 모든 기사, 혹은 지상 전시나 화보로 게재된 예술사진을 모아 엮은 것이 바로 이 『카메라당과 예술사진 시대』이다. 여기서 '예술사진'의 범주는, 생산 맥락의 측면에서 오류를 피하기 위해, 당시의 공식 예술 제도라 할 수 있는 전람회, 공모전에 출품된 작품으로 한정하였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예술사진'의 시기적인 발전 과정에 따라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제1부에서는 1914년 예술사진과 관련된 기사로서는 최초로 신문 지상에 등장한 성우사진회의 공모전 당선 사진부터, 1929년 조선 최초의 예술사진전람회인 정해창의 ≪제1회 예술사진개인전람회≫와 조선박람회의 ≪예술사진전람회≫에 이르기까지, 공모전과 전람회 기사를 통해 '예술사진'이라는 용어의 등장과 정착을 추적한다. 다음으로 제2부에서는 1930년대 초 아마추어 사진가의 저변이 확대되고 각종 공모전을 통해 예술사진에 대한 인식이 대중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중등학생과 전문학생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이었던 매일신보 주최 ≪전선전문중등학생작품모집≫이나, 1930년에 '첨단을 걷는 예술 양식'의 하나로 구성사진과 포토그램 등 추상적인 사진을 소개한 동아일보를 비롯해 각 신문사에서 다양한 외국 예술사진을 소개하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마지막으로 제3부에서는 예술사진이 생산, 유통되는 장이자 사진가에게 지위와 권위를 보장해주는 등용문 제도로 자리 잡은 사진 공모전을 통해 예술사진이 어떻게 제도화되는지 살핀다. 이 시기에는 경성일보, 매일신보와 같은 총독부 기관지에서 개최한 공모전뿐 아니라 조선일보 주최의 ≪납량사진현상모집≫의 경우처럼, 민족적 차별을 극복하고자 조선인에 의해 주최되고 심사위원이 전원 조선인으로 이루어진 공모전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요컨대 이 책은 '살롱사진'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오해와 편견으로부터 근대 예술사진을 구해내고 원래의 다양한 양상과 생산 맥락을 전체적으로 복원해내기 위한 첫 걸음으로서 의미 있는 시도이다. 동시에 한국 근대의 사진 문화, 시각 문화의 모습을 이해하고자 하는 연구를 위한 다양한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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